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작품 보는 눈이 조금 더 트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우선은 석사 논문을 쓸 때가 그랬다. 석사가 지천에 깔린 요즘이라 혹 비웃음 살까 두려워 입 밖으로 잘 꺼내지는 않지만 공부가 많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에도시대의 화가를 찾아 그가 쓴 기록들을 발굴하여 읽고 음미하며 당시 이 사람의 생각을 추적한 것은 생각의 깊이를 더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생에 걸쳐 그린 작품들을 모두 나열한 다음 내가 생각한 기준에 따라 분류해본 것은 큐레이팅의 기초가 되어줬다.
그 다음에 공부가 많이 된 것은 박물관 학예사로 일할 때였다. 아마 박물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도자기, 공예, 불교미술 공부는 따로 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명품 뿐만 아니라 그 밑의 급의 작품들도 충분히 가치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내 기획으로 전시를 준비할 때 훅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수장고에 수 십 년간 잠자고 있는 유물들을 꺼내 주제에 맞춰 전시할 만한 것, 아닌 것을 분류하는 일은 다양한 관점과 다각도의 검토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전시라면 명품을 보완해줄 조연 작품들이 필요하다. 이 작품들은 스스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명품과 함께 놓임으로써 생명력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 선정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