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강의를 할 때마다 항상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스 미술이 대표적이다. 이를 말할 때 나도 모르게 한 번 입을 다물고 한 템포 쉬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 그 이유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어가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미술사를 지역으로 구분할 때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라고 한다. 동양미술사는 한국 외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일본, 인도미술사를 통칭할 때 사용한다. 서양미술사는 유럽의 미술사(현대에 미국미술도 추가)를 의미한다.

최근 직장인 법정교육의 미술사 강의 영상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어서 얼마 전에 원고를 모두 써서 보냈다. 주제는 크게 동양과 서양미술사 비교다. 처음 목차를 만들면서 꽤 고심을 했다. 동아시아의 고전 수묵화와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회화를 비교하는 게 목표라서 당연히 ‘동아시아의 회화와 유럽의 회화 비교’라고 썼지만 결국 수정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겐 ‘동양화와 서양화’가 더 익숙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중성도 고려해야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썼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양화면 인도회화, 동남아시아 회화 다 들어가야 하고, 서양화면 유럽 외에 미국미술도 들어가야 하는데 적확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게 못내 깨름칙했다.

내 개인 논문을 쓰거나, 나의 전공을 말할 때는 일본과 중국 청나라 회화의 교류를 연구했으므로 ‘동아시아 회화교류사’라고 말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인 동양과 서양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많이 난감하다. 근대 일본에서는 동양화, 서양화, 그리고 자신들의 미술은 별도로 ‘일본화'라고 구분했다. 이 구분법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미술대학에서 동양화과, 서양화과라는 명칭을 볼 때마다 언제쯤 바뀌려나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