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바라볼 때 층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다. 역사적 가치, 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아름다움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편이 좋다. 같은 아름다움이라도 어떤 것은 인간의 7가지 감정,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에 딱 들어맞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보다 높은 이상, 진리(眞)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둘 다 아름다움이라는 범주에 모두 들어가고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지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에서 층위를 나누자면 후자를 보다 높은 층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문학에서 작품의 주제와 서사를 기준으로 아름다움의 층위를 구분할 수 있다면, 미술사에서는 작품의 주제와 그리는 자의 인품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붓놀림과 화면 구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서양미술은 논외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과 그 시작이 우리와 아예 다르다). ‘심수상응(心手相應)’이라는 말처럼 마음과 손이 하나로 통해 그린 그림이 단순히 보기에 좋은 그림을 넘어 진(眞)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지난 10년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보기에 이쁘고, 화려한 작품도 많고, 이런 것들이 시장에서 통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반대로 성리학적 사상의 틀로 예술을 재단한 조선시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어느 나라와 비교해봐도 화려하고 치밀했던 고려의 미술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