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개념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마치 게임에서 스테이지1, 스테이지2처럼 인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가 끝나면 로마, 그리고 중세, 르네상스 이렇게 외우고 있듯이 시대를 뭉텅이로 잘라서 공부합니다. 그리스의 특징은 이러이러하고, 인상주의의 특징은 저러하다는 식으로 수학 개념 외우듯 공부하죠.
이런 방식의 공부 역시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이렇게 공부해야 된다고 보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공부입니다. 시간은 그 어느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페이스로 흘러왔고 사람은 그 흐름에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은 세월의 흐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입니다.
미술사를 강의할 때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1392년에 조선이 개국했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자. 오늘부터 조선이야. 그러니까 고려 청자는 버리고 새시대에 걸맞게 백자를 만들자!”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특정 사건이 영향을 크게 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늘 해오던 방식대로 하되 서서히 변화를 주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새로운 분청사기, 백자가 나왔다는 점을 이해해야 비로소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해의 기반이 갖춰진 후에 시대별 특징을 공부하면 훨씬 와닿고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하게 수학 공식 외우는 것처럼 여겨져서 재미도 없고 골치만 아파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