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근현대 화가 제백석(1864-1957)은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似與不似之間)"에 있는 그림이 가장 귀하다고 했다. 제백석은 그림이 대상을 너무 닮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일”이 되고, 너무 닮으면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라 말했다. 닮음과 닮지 않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어야 좋은 작품으로 여긴 것이다. 대상과 꼭 닮은 그림은 그저 신기하고 감탄만을 불러올 뿐 그 이상의 감동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 실력이 없거나 낙서에 가깝다.
이 같은 생각은 제백석의 독창적인 이론이라 하긴 어렵고 고전 회화에서 늘 중요한 기준이 되어온 것이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어려운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감정을 담은 추상회화가 하나의 미술 장르로 발전한 현대에는 꼭 들어맞는 이론이 아니게 되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는 최상의 회화기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풍경이나 인물을 그릴 때는 지금도 이 기준을 적용시킬 수 있다.
중국화론을 보면 닮은 듯 안닮은 듯한 경지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수많은 서화가들이 하나같이 강조하지만 정작 어떻게 그릴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법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나마 공통점을 뽑아보면 개성을 표현할 것, 개성 표현을 위해 학문과 생각의 깊이를 발전시킬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눈으로 본 그대로를 그리는 게 아니라 심상(心像)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중요한 것은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