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대산인(八大山人), <팔팔조도(叭叭鳥圖)>, 《안만첩(安晩帖)》, 1694, 31.8x29.7,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일본

중국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교체되던 시기에 활동한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이라는 화가가 있다. 그의 본명은 주탑(朱耷)으로 명 황실의 후손이다. 국가가 교체된다는 것은 태어날 때도 대한민국이고, 죽을 때도 대한민국일 가능성이 높은 지금 시각으로 볼 때 어떤 의미였을지 와닿지 않을 역사책 속 한 챕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고 깊은 상상에 잠겨보면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 어땠을지 가늠은 할 수 있다. 역사 공부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문장에 담겨있는 여러 상상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탑은 어린 시절에 서원의 제생(諸生)이 되어 명나라의 사대부들이 그러했듯 소위 엘리트 코스의 길을 걸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주탑이 18세가 된 1644년에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자금성 뒤의 매산(煤山, 지금의 경산)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명은 멸망하고 청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명 황실 후손이던 주탑의 세속적인 성공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탑은 바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법명을 팔대산인이라고 지었다. 추가로 말을 못하는 언어 장애인에,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조선이 개국하고 개성 왕씨 중 왕위에 가까웠던 인물들을 전부 제거한 것처럼 멸망한 왕조의 후손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생존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청 조정에서는 그를 수십 년간 예의주시했지만.

팔대산인의 작품은 당시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그의 화조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데 고필담묵(마른 붓에 옅은 먹)으로 황폐한 풍경처럼 그린 산수화와 달리 화조화는 진한 먹을 적절하게 섞어서 화면의 변화가 매우 풍부한 편이다. 그리고 그의 화조화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울분에 차있다기 보다는 고요한 가운데 도도하다. 세상 일에 관심없다는 듯 시니컬함이 지배적이다.